홍여공(洪汝恭)과 팔효문(八孝門)

 

연천군 중면 횡산리(橫山里) 68번지에 있는 향토유적 제5호 정려각은, 조선 초 문화현령을 지낸 홍여공(洪汝恭)의 아내 동래 정씨(東萊鄭氏)가 효행을 하여 나라에서 효부 정려의 포장(褒奬)으로 지어지게 된 것이다.동래 정씨의 효행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문화현령(文化縣令) 홍공(洪公)의 아버지요 정씨의 시아버지인 잠(潛)공이 연로하여 등창이 나서 백약이 무효한데, 며느리 정씨가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어 3일만에 시아버지를 소생시켰다. 그 지극한 효성이 사람의 입을 타고 나라의 임금에게 들려지매 정려(旌閭)의 포상을 받고 정경부인(貞敬夫人)의 첩지를 받았다. 이로써 효부 정씨는 오늘날 이 고장 사람들이‘1孝婦 7孝子’라고 일컫는 홍씨(洪氏) 가문(家門)을 빛낸 주인이 되었다.

 

홍씨 가문의 7효자는 그 첫째가 이 효부 할머니의 가르침을 받은 손자(孫子)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하고 증(贈) 좌의정(左議政)에 추존(追尊)된 홍한경(洪漢卿)이다. 공(公)은 아버지 홍계부(洪季阜)가 전염병에 걸려 앓고 있을 때, 닭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도 병(病)을 더 악화시킨다는 의원(醫員)의 말 때문에, 닭고기를 드리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졸(卒)하자 공(公)은 아버지께 닭고기를 올리지 못한 것이 한(恨)이 되어, 평생 닭고기를 먹지않았고, 아버지의 제사상(祭祀床)에는 반드시 닭고기를 구은 계적(鷄炙)을 올려 정성으로 제사를 모셨다. 공(公)은 운명할 때에도,“내가 죽은 뒤에 내 제사상에는 결코 닭고기를 올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효행이 알려져 죽은 후 좌의정(左議政)에 증직(贈職)되었다.

 

두번째 효자인 홍임(洪霖)은 홍한경의 손자이다. 이조정랑(吏曹正郞임)을 역임한 공(公)은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하게되자 자기의 손가락을 잘라 선혈(鮮血)을 어머니의 입에 흘려 넣어 드렸다. 기절하였던 어머니가 소생하여 천(天壽)수를 다하고 돌아가니, 홍임은 정성을 다하여 3년상을 모시고 눈물로 탈상하였다.

 

세번째 효자는 홍임의 손자인 홍범(洪範)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첨(僉)중추(中樞)를 역임한 공(公)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정성으로 극진히 봉양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 피난을 다니는 중에 어머니가 병이 들어 갑자기 돌아가시자, 홍범은 예의를 지켜 지성으로 초종상(初終喪)을

잘 모셨다.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천하에 드문 효자라고 칭송하였다.

 

넷째와 다섯째 효자는 홍범의 아들 삼형제이다. 큰아들은 삼준(三俊),둘째는 삼달(三達)이고, 셋째는 삼석(三錫)이다. 이들은 아버지가 치료 불가능한 종기가 나서 고통이 심할 뿐만 아니라 목숨마저 위태롭게 되자, 삼형제가 번갈아 입으로 종기의 고름을 빨아내어 6일만에 아버지를 소생시켰다. 사람들 사이에 효자로 소문이 나니, 고을 원님이 이들을 나라에 효행(孝行)으로 천거하여 첫째 삼준은 장령(掌令)을 역임하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서되고, 둘째 삼달은 도사(都事)에 추서되고 셋째 삼석은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

 

여섯째 효자는 홍삼준의 손자 홍하적(洪夏績)이다. 공(公)은 병에 걸린 아버지 만태(萬泰)공이 바닷고기인 방어를 먹고 싶다고 하여 냇가에 가서 울며 헤매다가, 마침내 방어 한 마리가 얕은 물에서 뛰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잡아다가 아버지에게 드려 병을 낫게 하였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져 나라에서는 감역(監役)을 제수하였다.

 

일곱째 효자는 양무공신(揚武功臣) 항하영(洪夏寧)의 자(子)인 종옥(宗沃)으로, 역시 어려서부터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병이 위중해진 어머니 평산 신씨(平山申氏)가 혼수상태에서, “앵두가 먹고 싶다.”라고 한 말을 들었으나 당시는 9월이어서 앵두를 구할 수가 없었다. 공(公)은 나뭇잎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앵두나무를 바라보며, 앵두를 구해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앵두나무에 10여 개의 빨간 앵두가 달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이 앵두를 먹고 소생하여 천수를 누렸다. 마을 사람들이 공(公)을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찬하니, 그 소문을 들은 고을 원이 그를 효행으로 나라에 천거하여 지평(持平)을 제수받게 되었다.